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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고린도전서 2장 1-5절, 혹시 자랑하고 있는 건 아닌가요?

1 형제들이여, 내가 여러분에게 가서 하나님의 비밀을 전할 때 달변이나 지혜로 하지 않았습니다.
2 내가 여러분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분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했기 때문입니다.
3 내가 여러분에게 갔을 때 나는 연약하고 두렵고 떨리는 가운데 있었습니다.
4 내 말과 내 선포는 지혜롭고 그럴듯한 말들로 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이 나타낸 증거로 한 것입니다.
5 이는 여러분의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고전2:1-5, 우리말성경)

 



 공동체에서 간증을 하거나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개인의 지혜나 언변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공동체의 목적은 예수님의 이름이 높아지고 드러나게 하는 것이기에, 우리의 말과 생각을 조심해야(두려워하고 떨어야) 합니다. 우리의 교제 가운데 개인의 능력이 아닌 성령님이 함께 하시길, 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길 기도합니다.

 나아가 한 가지 더 나누고 싶은 것은, 공동체 가운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의 잘못된 태도에 관한 것입니다. 신학생일 수도, 성경을 많이 읽은 사람의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이들은 먼저, 본인의 지식이 스스로 얻은 것인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경험을 통해 스스로 '체득'한 지식과 다른 사람이 체득한 것을 농축해 놓은 글, 영상 등의 매체를 통해 '인식'한 지식은 다릅니다. 물론 인식을 통해 체득할 수도 있겠지만 '인식뿐인' 지식은 온기 없는 관념의 사체와도 같습니다. 이것을 인지할 때, 우리는 겸손한 자세로 공동체를 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겸손이 없을 때 사랑도 없습니다. 보통 우리는 무언가를 남들보다 더 잘 알 때 우월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내가 하나님에 대해 조금 더 안다고 해서 우월감을 느끼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반대 되는 것입니다. 우월감에는 겸손이 없기 때문이죠. 하나님은 개인마다 최선의 상황에서 역사하시고 만나주신다는 것을 믿기에, 우리 이웃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조금 적게 알고 있더라도 그들의 믿음을 진지하게 대해야 합니다. 절대로 더 유치하거나 수준 낮은 신앙이 아닌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때, 가장 절묘한 방식으로 그들을 경멸했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이웃의 신앙을 폄하하는 것은, 스스로가 하나님의 사랑에 거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한다면, 하나님께 거저 받은 사랑을 기꺼이 거저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웃을 위해 기도해주는 사람이 되길, 더 깊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나눠주는 사람이 되길 소망합니다.

 

*참조

헬무트 틸리케,『신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박규태 옮김, 박영돈 해설, IVP(2019), p3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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