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에세이

예정론은 옳을까?

예정론에 관하여

로마서 9(토기장이의 비유)

 

*예정론이 맞다

 

- 인간의 구원을 창세 전부터 결정을 해 놓으셨다.

 

-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강조.

 

- 개인의 구원은 선택받거나 유기됐다.

 

-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하나님이 이렇게 선택을 하고 편애를 하시는 것에 대해서 인간인 우리가 어찌 반항을 할 수 있는가?

 

 

 

*예정론은 아니다

 

- 로마서 9장은 이스라엘 민족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어떤 큰 목적을 위해 이스라엘을 어떻게 선택하고 또 어떻게 대하셨는지에 대한 구절이다.

 

1. 로마서 9장은 로마서 10, 11장을 함께 읽어 바울이 던지고 있는 주제, 논증의 흐름 등을 전체적으로 파악해야 된다. 로마서 9, 10, 11장은 전체에 걸쳐서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이 다뤄지고 있다.

 

-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혈통에 의지하여 구원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바울은 야곱으로 대표되는 이스라엘과 에서로 대표되는 에돔을 예로 들어서 혈통이 축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 즉 바울은 국가로서의 이스라엘 백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 어떤 개인의 구원에 대한 선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2. 토기장이의 비유는 바울의 오리지널 비유가 아니라, 예레미야 18 1-10절에서 가져온 비유이다. 이 예레미야서 본문에서 주목할 점은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이 국가가 할 행동을 미리 결정하신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국가가 하는 일을 지켜본 후에 그 행동에 대한 결과로써 그 국가를 어떻게 할지 결정하신다는 것이다.

 

- 따라서 바울의 말은, 이스라엘이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된 하나님을 따르지 않았고 그 결과로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이 그들을 적절하게 대하실 것이라는 말이다.

 

- 로마서 9 13절과 말라기 1 3절에 사용된 '증오'라는 히브리어 관용구 사네’(헬라어로는 미세오’)는 다른 사람보다 덜 사랑한다는 뜻이다(자세히는 조금 사랑하다’). 하나님이 에서와 그의 자손들을 미워하고 저주했다는 게 아니다. 이 관용구는 누가복음 14 26절에서 예수님도 사용하신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미세오)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이 말씀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 자매, 또는 자기 목숨을 경멸하고 미워해야 된다는 게 아니다. 단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부모, 형제, 자매들을 향한 사랑보다 커야 한다는 말이다.

 

- (모세와 대립한)파라오의 경우 하나님에 의해 그의 마음이 더 완악해졌다고 하는데, 이것은 파라오의 행동에 대한 하나님의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파라오는 그의 행동을 돌이킬 많은 기회가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고 하나님은 이러한 그의 행동에 따라 그를 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파라오를 완악하게 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를 공의롭게 대하셨고 그가 구원받기 원하셨을 것이다.

 

 

 

3. 예정론을 논리적으로 따라가 봤을 때 그에 대한 자연스러운 추론은, '하나님이 누군가는 기회조차 주지 않고 처음부터 멸망하기로 작정을 한 그런 증오의 신이다'라는 것이다.

 

- 물론 예정론자들이 '하나님은 거짓말쟁이다(사랑의 하나님, 자비의 하나님이라는 면에서) 혹은 증오의 신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 성경에 기반해 증명되는 어떠한 주장도 하나님이 증오의 신이라는 결론을 내릴 순 없다. 인정한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성경 구절 중 수많은 부분을 알 수 없고, 나는 당신에게 어떠한 결론을 내려줄 수도 없다. 하지만 예정론을 통해 하나님이 거짓말쟁이라는 결론이 나온다면, 예정론은 성경적인 것이 아니다. 그 구절들의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더라도 모르는 대로 놔둬라. 전 세계에 대한 심판이 공의롭지 못할 것이라는 결론보다는 모른다고 하는 편이 낫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그 분의 자비가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드러난다. (존 웨슬리의 주장을 정리한 것)

 

 

 

*생각

 

- 나는 예정론이 맞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의 행동에 따라 하나님이 우리를 다르게 대하신다고 믿기 때문이다.


-
하지만 예정론이 아예 틀린 건 또 아니다.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하신 분으로, 우리의 미래를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말씀하셨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순종할 것을 알고 계셨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미래를 아시기에 우리가 구원을 받을지 못 받을지도 알고 계실 것이다.


-
그러나 이것을 예정론이라 부르고 싶지는 않다. 하나님은 여전히 모든 사람이 구원받길 원하시고 누구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의 행동을 돌이킬 때, 구원해 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구원받지 못할 사람을 정해 놓으신 것이 아니라, 그저 알고 계신 거라고 말하고 싶다. 이 두 가지는 분명 다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