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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2]성경의 기도를 공부해보자, <바울의 기도>

2.   기도의 틀

 

이 장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위한 바울의 기도로 시작한다(데살로니가후서 1:1-12). 1-2절은 바울의 첫인사이고, 11-12절의 본 기도로 들어가기 전 3-10절은 바울이 기도할 때 품은 사고의 틀을 잘 보여준다. 크게 두 가지 특징을 가지는데 1) 은혜의 징후들로 인한 감사와 2) 장래의 신원(伸寃)에 대한 확신이다.

 

 

:::은혜의 징후들로 인한 감사:::


- 우리는 어떤 것들로 인해 감사하는가? 대체적으로 우리의 감사는 물질적 행복이나 안락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 같다. 가장 자주 감사하는 제목을 돌아보면 자신이 가장 중시하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물질적 형통으로 인한 감사의 비율이 높은 것은 그만큼 우리가 물질적 형통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 하지만 바울의 기도는 다르다. 그는 자신의 편지를 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나타나는 은혜의 징후들로 인해 감사한다.

 

i.       바울은 독자들의 믿음이 자라고 있음에 감사한다.


- 믿음이 더욱 자란다고 한 것을 보면 최초의 회심이 아닌, 하나님을 점점 더 의지하는 것에 대한 감사를 의미하는 것이다. 교인들은 믿음에서 자라고 있었다. 영적 성숙을 향해 발돋움하고 있었으며 바울은 이에 감사한다.

 

 

ii.     바울은 그들의 사랑이 풍성함에 감사한다.


- 데살로니가 교회 가운데 서로를 향한 사랑이 자라고 있었다. 이러한 사랑은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 특유의 표이기에(요 13:34-35),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라는 근거였다. 데살로니가 회중은 소수의 영적 엘리트층만이 아니라, “너희가 다” 이 사랑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것은 부흥의 모습이며, 바울은 이에 감사한다.


- 교회 내의 연합은 여타 공동체들과는 다른 특수성을 갖는다. 교회의 무한히 다양한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유일한 끈이 예수님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지역 교회는 서로를 하나로 묶어주는 요소가 거의 없을 때(예수님 안에서 누리는 하나님의 사랑보다 사회적, 인종적, 경제적, 기질적 동질성이 더 중요해질 때) 분열된다.


-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사랑한다는 고백이 그분을 똑같이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을 향한 사랑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마땅히 우리는 그 고백이 얼마나 진지한 것인지 되물어야 한다.

 

 

iii.    바울은 그들이 환난 중에 인내함에 감사한다.


-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믿음과 사랑이 자라남에 따라, 영적으로 충분히 강건해져 박해와 환난을 견디며 인내했다. 바울은 이것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자랑했다(살후 1:4). 이것은 바울 본인의 성취를 향한 자랑이 아니다. 바울은 다른 성도들의 귀한 모본이 되어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모습을 자랑하는 것이다. 그의 자랑은 다른 교회들 앞에서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더 많은 찬양과 감사나 다름없다.

 

 

:::장래의 신원(伸寃)에 대한 확신:::


- 5-10절의 “하나님의 나라”는 궁극적으로 완성된 나라,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가리키며 이는 그분의 최종 승리를 가리킨다. 비슷하게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보여준 인내도 무턱대고 버티는 오기가 아니라, 바로 그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는 한결같은 견딤이다.


- 그리스도인들은 그저 ‘고난 자체가 선하다’는 미련하고 절망적인 신념 때문에 고난을 자원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이 선뜻 고난을 감내함은, 늘 목표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i.       신자들에게는 장차 신원이 있다.


- 기다리기 지친 것일까? 우리는 주님의 재림에 대한 기대감을 잃고 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구름만 짙게 껴도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했다. 나에게 이러한 기대가 있었던가? 성경은 예수님의 재림, 종말을 내다보고 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성경적 영성을 지향한다면, 우리는 장차 올 세상을 지향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십자가에 달려 멸시받으신 메시아를 따르기가 어렵다. 살아남을 수 없다.


- 그리스도인이 고난 가운데 던져질 때도 낙관할 수 있음은, 결국에 세워질 하나님 나라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다스리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그리스도인은 고난의 고통을 풀어버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다.

 

 

ii.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응이 있다.


- 보응의 개념을 불쾌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보응은 쩨쩨하고 가혹한 복수이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식의 단순한 분석은 통하지 않는다. 공정성의 차원에서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악이 발생하면 대가가 치러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정성은 무너진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시기에 악에 대한 대가는 필연적이다.


- “하나님이 하나님이실진대 그럴 때는 반드시 보응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덕적 질서가 몽땅 무너진다. 하나님의 형언할 수 없는 사랑으로, 예수께서 우리 같은 죄인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고자 보응을 당하셨다. 그런데 우리가 보응을 받아 마땅한 존재임을 인정하지 않고 그분이 베푸시는 용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각자가 직접 그 보응을 당하는 수밖에 없다.”

 

 


-복습과 묵상을 위한 질문-


 

 

1.    바울의 감사 제목은 무엇인가? 당신의 감사 제목은 무엇인가?


- 나의 죄인됨을 깨달은 것이 가장 감사한 일이다. 모태신앙으로 자라나서 내 삶 속에 기독교인의 종교적 행동은 너무나 익숙했다. 주일에 교회를 빠지지 않고, 여러 봉사들을 자연스럽게 했으며, 헌금을 꾸준히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이 독이 됐다. 주변에서는 나를 신실한 성도, 하나님의 참된 자녀라고 했는데.. 과연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그랬을까?


- 순진하게도 나는 어렸을 때부터 교육받아온 대로 하나님을 믿기로 결심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경험 없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결심한 것이다. 이런 신앙이 진짜 신앙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제와 돌이켜 보면 길가, 바위, 가시밭에 뿌려진 신앙이었다.


- 하나님은 이런 내가 죄에 대한 감각을 갖게 해주셨다. 나의 악함을 알게 해 주신 것이다. 묵상할수록 더욱 감사하게 되는 일이다.

 

 

2.    사람들의 삶을 볼 때 마땅히 하나님께 가장 깊이 감사해야 할 이유들은 무엇인가? 왜 그런가?


- 마땅히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우리 죄를 대속해 주신 일에 감사해야 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하나님께 버림받으셨다. 하나님과 영원하고 한이 없는 사랑의 교제를 하고 계신 예수님이 하나님께 버림받으신 것이다. 또한 스스로를 버리셨다. 모든 것의 주인 되신 하나님이 버려지셨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끊어지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깊은 사랑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이다. 우리가 무엇이길래, 어떤 가치가 있길래 이렇게 과분한 사랑을 주셨을까. 아마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해주시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에 사랑해주시는 것 같다.


-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본 모습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해주신다는 것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이에 마땅히 감사한다.

 

 

3.    예수의 재림에 대한 기대감은 바울의 가치관과 기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 바울은 물질적인 것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늘의 영역에 속한 것을 소망하게 되었다. 그래서 바울의 마음과 생각은 하늘의 모든 귀한 것들 쪽으로 기울게 됐다. 바울은 그의 삶 속에서 은혜의 징후들을 찾아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했으며, 장차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하나님의 백성에게 그분의 완전한 신원이 있을 것을 확신했다.


- 나의 기도제목들에 비하면 바울의 기도는 정말 고결하다. 근시안적이고 시시했던 나의 기도들을 돌아보며 반성하게 된다.

 

 

4.    영원한 가치를 내다보며 살아가도록(또한 기도하도록) 우리를 독려하는 신약의 가르침은 그 밖에 어떤 것들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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